요한복음_08 · 사실에 의한 믿음 |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라는 실존
Update: 2025-08-26
Description
· 사실에 의한 믿음 |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라는 실존
· 요.1,43~51
· 유튜브로 시청할 것을 권합니다. 자막이 있습니다.
---
· 몇몇 분의 헌금으로 이 영상을 내보냅니다. 감사하다는 말씀은 따로 하지 않겠습니다. 그 마음을 말 한 마디로 퉁칠 수 없습니다. 축복하며 기도하겠습니다.
· 헌금: 농협 060-02-192192 · 문경◯
---
· 편견에서 놓여야 비로소 보이는 세계
· 예수님께서 나다나엘을 칭찬하신 이유
· 예수님을 따를 생각을 ‘왜’ 했을까
---
1. 편견과 세속적 욕망: 영적 성장의 가장 큰 적
성경 속 인물들의 내적 갈등은 오늘날 신앙인들이 겪는 문제와 놀랍도록 유사하며, 이는 편견과 세속적 욕망이 영적 성장을 가로막는 핵심 요소임을 보여준다.
1.1. 성경 속 인물들의 사례: 편견과 세속적 욕망의 구체적 모습
제자들의 세속적 목표와 이해 부족:
야고보와 요한 형제는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이라는 중대한 메시지에도 불구하고,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여 주옵소서"라며 예수님의 나라에서 높은 지위를 차지하려는 세속적 욕망을 드러냈다 (막 10:37 ). 나머지 열 제자들도 그들에게 화를 냈는데, 이는 그들 역시 "같은 생각으로 세속적인 지위를 탐했음"을 시사한다. 제자들은 십자가의 죽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유대인의 나라가 다가온다고 믿었으며, 자신들이 원하는 것에 예수님의 말씀을 묻어버렸습니다." 이는 "‘땅의 것에 매이는 두 번째 신앙 단계’"로 묘사된다. 그들은 "십자가와 부활 사건이 있고 난 후에야 예수님께서 추구하셨던 것이 무엇인지 깨달았습니다."
나다나엘의 출신에 대한 편견:
나다나엘은 빌립이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를 소개했을 때,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요 1:46 ). 이는 당시 유대인들이 "갈릴리 나사렛을 동네 취급도 하지 않았던 고정관념과 편견"을 그대로 드러낸 것으로, 그는 "예수님의 출신을 보고 경멸하는 태도를 보였고, 자신의 생각을 사실이라고 믿었습니다."
1.2. 현재 신앙인들에게 주는 의미: 편견의 위험성과 세속적 신앙 단계의 문제점
편견은 신앙의 가장 큰 적:
"편견은 신앙의 가장 큰 적이며, 현재 많은 기독 신앙인이 자신이 얼마나 편견에 사로잡혀 있는지 모른다"고 지적된다. "정상적인 종교라면 편견을 경계하고 그냥 넘어가지 않습니다."
거짓과 자기 이익에서 비롯된 편견:
편견은 "‘거짓’에서 출발하며, 자기 이익을 위해 속이려는 마음(간사함, δόλος)에서 비롯"된다. 이는 "모든 악의 출발점이며, ‘진실(ἀλήθεια)이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
'땅의 것'에 매이는 신앙:
제자들처럼 "이 땅의 것을 최고 목표로 삼고,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 ‘내가 어떻게 덕을 볼 것인가’에만 초점"을 맞추는 신앙은 "'두 번째 신앙 단계'에 머무는 것"이다. 이러한 편견에 사로잡히면 "성경이 제시하는 더 높은 차원의 세계에 들어서지 못하고 결국 이 땅의 것을 최고의 목표로 삼게 됩니다."
집단적 편견에 대한 경고:
신천지, 통일교, 사랑제일교회와 같은 집단은 "‘믿음을 가장한 편견에 집단적으로 사로잡혀 있다’"는 공통점을 가지며, 이는 "기독 신앙인 자신이 신앙의 편견에서 자유로운지 깊이 따져 보아야 할 필요성"을 일깨워준다.
2. 편견 극복과 진실 추구: 영적 성장을 위한 필수 과정
진정한 영적 성장과 자유를 위해서는 편견을 극복하고 진실(사실)을 추구하며 자신을 부인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2.1. '자기 부인'과 '진실 추구'의 중요성
편견 극복은 '자기 부인'의 핵심:
"편견을 극복하는 것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의 핵심"이다. "편견에 사로잡힌 '자기'를 넘어서지 못하면 예수님을 믿어도 결국 헛 믿는 것이 됩니다."
'진리'는 '사실'이다:
예수님께서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고 하신 말씀은 "‘사실을 알려고 노력하면 그 사실이 우리를 자유롭게 할 것’이라는 의미"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진리(ἀλήθεια)'는 단순히 '사실'을 의미하며, "사실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믿음은 진실과 동일하다:
히브리어 '아멘(ָאֵמן)'과 '에무나(ֱאמּונָה, 믿음)'는 '참으로', '진실로', '신뢰한다', '확실하다'는 뜻을 지닌 같은 어원에서 나왔다. 이는 "믿음은 곧 사실 내지는 진실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며, "거짓을 일삼으면서 믿음을 논할 수는 없는 일"이다.
2.2. 나다나엘의 모범: 편견을 넘어서는 의지
"와 보라!"에 응답한 나다나엘:
나다나엘은 나사렛에 대한 편견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빌립의 "와 보라!"는 말에 예수님께로 왔다. 이는 그가 "자신의 생각을 넘어서려는 의지"가 있었고, "편견을 편견으로 알고 넘어설 준비가 된 '사실의 사람(ἀληθῶς)'이었음"을 보여준다. "사실이면 무엇이든지 받아들이겠는 그 마음이 편견이 자리를 잃게 합니다."
'간사함이 없음'의 칭찬:
예수님께서 나다나엘을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라고 칭찬하신 것은, 그 속에 "거짓이나 속임수가 아닌 '참', '사실', '진실(ἀλήθεια)'이 있었기 때문"이다.
2.3. 영원의 세계를 경험하는 '세 번째 신앙 단계'
하나님의 영을 깨닫는 단계:
현재 신앙인들은 "부활의 시대를 살고 있으므로, 자신을 버려 하나님의 영을 깨닫고 하나님께서 아버지로서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실감하는 '세 번째 신앙 단계'에 들어서야" 한다. 이 단계를 통해서야 비로소 "‘보여야 할 것이 보입니다’."
'더 큰 일'을 목격:
나다나엘처럼 편견을 넘어선 자는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예수님) 위에 오르락내리락하는 야곱의 사닥다리와 같은 ‘더 큰 일’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는 "예수님이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분이시며, 사람의 자식에서 하나님의 자식으로 끌어올리려는 요한의 의도와 연결"된다.
있는 그대로 보는 믿음:
"믿음은 ‘있는 그대로 보는 데서 출발하며’, 내 안에서 편견이 사라질 때 하나님 아버지께서 어찌하시는지 보게 됩니다." 이것이 "‘의인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사는’ 하박국 2장 4절의 의미"이다.
3. 요한복음과 공관복음의 차이: '사실'을 넘어선 '지향점'과 '영적' 의미
요한복음은 공관복음과 기록자의 입장, 내용의 취사선택, 관점 등 여러 면에서 뚜렷한 차이를 보이며, 이는 편견을 넘어 영적 진실을 추구하려는 저자의 의도를 반영한다.
3.1. 기록자의 입장과 목적: '기자'와 '저자'의 차이
공관복음은 '기자'와 유사:
마태, 마가, 누가는 "마치 신문 기사를 쓰듯 사실 그대로를 기록"했다는 점에서 '복음서 기자'라고 불릴 수 있다. 이들은 "축자영감설 또는 기계적 영감설에 가까운 방식"으로, "사실에 조금 더 가깝게 기록"했다.
요한은 '저자'에 가까움:
요한은 "자기 생각을 그만큼 많이 담아" '저자'라고 불릴 수 있다. 요한복음은 "사실을 넘어서는 무엇이 있으며, 그래서 더더욱 ‘영적(靈的)’"이라고 언급된다. 요한은 "사실보다는 사건이 무엇을 지향하는가에 바탕을 둔 저작물"이며, "자기가 전하고자 하는 바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3.2. 내용의 취사선택 및 관점: '사실'에서 '지향점'으로
세례 요한 기록의 차이:
마태와 누가는 세례 요한이 예수님의 메시아 여부를 고민했던 부분과 그의 죽음을 기록했지만, "요한복음에는 세례 요한의 이러한 고민이나 감옥에 갇혔다 죽은 사실에 대한 기록이 없습니다." 요한은 "자신이 전하고자 하는 바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판단하여 이 부분을 제외했다.
예수님 탄생 기록의 차이:
마태와 누가는 예수님의 탄생지를 "베들레헴"으로 언급하며 "다윗의 자손"임을 드러내려 한 반면, "마가와 요한은 예수님의 탄생 이야기를 다루지 않습니다." 요한은 "유대인의 메시아에 대한 오랜 관념(다윗의 자손 등)을 배제하고,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라는 표현을 통해 나사렛 사람 예수의 실존을 가지고 말하려 했습니다." 그는 "막강한 타이틀을 내던지고 사실만 보고자 하는 입장"이었다.
'인자(人子)' 담론:
요한은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라는 표현과 '인자(υἱός τοῦ ἀνθρώπου, 사람의 자식)'라는 말을 통해, 예수님이 "사람의 자식에서 하나님의 자식으로 끌어올리려는" 의도를 담고 있다. 이는 "사람의 아들과 하나님의 아들을 동일시"하며, 기존 신학의 깊이가 얕음을 지적한다.
'진실로 진실로(Ἀμὴν ἀμὴν)'의 반복:
요한복음은 다른 복음서와 달리 "‘아멘(Ἀμὴν)’을 두 번씩 사용하는 특징"을 보인다. 이는 '진실', '확실함'을 강조하는 요한의 관점을 잘 보여준다.
4. 결론 및 시사점
성경 속 인물들의 내적 갈등은 현재 신앙인들이 편견과 세속적 욕망에 얽매여 있을 때 겪는 문제와 정확히 일치한다. 진정한 영적 성장은 이러한 '땅의 것'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사실(진실)'을 추구하며 '자기를 부인'하는 과정에서 시작된다. 나다나엘의 사례는 편견에도 불구하고 진실을 향해 나아가려는 의지가 있을 때, '더 큰 일'을 경험하고 영원의 세계로 들어설 수 있음을 보여주는 모범이다.
요한복음은 공관복음과 달리 예수님 사건의 "지향점"과 "영적" 의미에 초점을 맞춰, 독자들이 유대인의 오랜 관념이나 세속적 편견을 넘어 "나사렛 사람 예수의 실존"과 그가 궁극적으로 가져올 "영원한 세계"를 깨닫도록 이끌고 있다. 오늘날 한국 교회는 "믿음이 곧 사실 내지는 진실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는 점을 깊이 생각하고, "거짓을 일삼으며 믿음을 논할 수 없"음을 자각하며, 각 신앙인 개인이 신앙의 편견에서 자유로운지 깊이 성찰해야 할 것이다. 이를 통해 피상적인 신앙을 넘어 "하나님의 영원한 세계를 깨닫는 깊이 있는 신앙"으로 나아가야 한다.
---
---
· https://youtube.com/@moon.moksha
___
· 요.1,43~51
· 유튜브로 시청할 것을 권합니다. 자막이 있습니다.
---
· 몇몇 분의 헌금으로 이 영상을 내보냅니다. 감사하다는 말씀은 따로 하지 않겠습니다. 그 마음을 말 한 마디로 퉁칠 수 없습니다. 축복하며 기도하겠습니다.
· 헌금: 농협 060-02-192192 · 문경◯
---
· 편견에서 놓여야 비로소 보이는 세계
· 예수님께서 나다나엘을 칭찬하신 이유
· 예수님을 따를 생각을 ‘왜’ 했을까
---
1. 편견과 세속적 욕망: 영적 성장의 가장 큰 적
성경 속 인물들의 내적 갈등은 오늘날 신앙인들이 겪는 문제와 놀랍도록 유사하며, 이는 편견과 세속적 욕망이 영적 성장을 가로막는 핵심 요소임을 보여준다.
1.1. 성경 속 인물들의 사례: 편견과 세속적 욕망의 구체적 모습
제자들의 세속적 목표와 이해 부족:
야고보와 요한 형제는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이라는 중대한 메시지에도 불구하고,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여 주옵소서"라며 예수님의 나라에서 높은 지위를 차지하려는 세속적 욕망을 드러냈다 (막 10:37 ). 나머지 열 제자들도 그들에게 화를 냈는데, 이는 그들 역시 "같은 생각으로 세속적인 지위를 탐했음"을 시사한다. 제자들은 십자가의 죽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유대인의 나라가 다가온다고 믿었으며, 자신들이 원하는 것에 예수님의 말씀을 묻어버렸습니다." 이는 "‘땅의 것에 매이는 두 번째 신앙 단계’"로 묘사된다. 그들은 "십자가와 부활 사건이 있고 난 후에야 예수님께서 추구하셨던 것이 무엇인지 깨달았습니다."
나다나엘의 출신에 대한 편견:
나다나엘은 빌립이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를 소개했을 때,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요 1:46 ). 이는 당시 유대인들이 "갈릴리 나사렛을 동네 취급도 하지 않았던 고정관념과 편견"을 그대로 드러낸 것으로, 그는 "예수님의 출신을 보고 경멸하는 태도를 보였고, 자신의 생각을 사실이라고 믿었습니다."
1.2. 현재 신앙인들에게 주는 의미: 편견의 위험성과 세속적 신앙 단계의 문제점
편견은 신앙의 가장 큰 적:
"편견은 신앙의 가장 큰 적이며, 현재 많은 기독 신앙인이 자신이 얼마나 편견에 사로잡혀 있는지 모른다"고 지적된다. "정상적인 종교라면 편견을 경계하고 그냥 넘어가지 않습니다."
거짓과 자기 이익에서 비롯된 편견:
편견은 "‘거짓’에서 출발하며, 자기 이익을 위해 속이려는 마음(간사함, δόλος)에서 비롯"된다. 이는 "모든 악의 출발점이며, ‘진실(ἀλήθεια)이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
'땅의 것'에 매이는 신앙:
제자들처럼 "이 땅의 것을 최고 목표로 삼고,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 ‘내가 어떻게 덕을 볼 것인가’에만 초점"을 맞추는 신앙은 "'두 번째 신앙 단계'에 머무는 것"이다. 이러한 편견에 사로잡히면 "성경이 제시하는 더 높은 차원의 세계에 들어서지 못하고 결국 이 땅의 것을 최고의 목표로 삼게 됩니다."
집단적 편견에 대한 경고:
신천지, 통일교, 사랑제일교회와 같은 집단은 "‘믿음을 가장한 편견에 집단적으로 사로잡혀 있다’"는 공통점을 가지며, 이는 "기독 신앙인 자신이 신앙의 편견에서 자유로운지 깊이 따져 보아야 할 필요성"을 일깨워준다.
2. 편견 극복과 진실 추구: 영적 성장을 위한 필수 과정
진정한 영적 성장과 자유를 위해서는 편견을 극복하고 진실(사실)을 추구하며 자신을 부인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2.1. '자기 부인'과 '진실 추구'의 중요성
편견 극복은 '자기 부인'의 핵심:
"편견을 극복하는 것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의 핵심"이다. "편견에 사로잡힌 '자기'를 넘어서지 못하면 예수님을 믿어도 결국 헛 믿는 것이 됩니다."
'진리'는 '사실'이다:
예수님께서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고 하신 말씀은 "‘사실을 알려고 노력하면 그 사실이 우리를 자유롭게 할 것’이라는 의미"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진리(ἀλήθεια)'는 단순히 '사실'을 의미하며, "사실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믿음은 진실과 동일하다:
히브리어 '아멘(ָאֵמן)'과 '에무나(ֱאמּונָה, 믿음)'는 '참으로', '진실로', '신뢰한다', '확실하다'는 뜻을 지닌 같은 어원에서 나왔다. 이는 "믿음은 곧 사실 내지는 진실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며, "거짓을 일삼으면서 믿음을 논할 수는 없는 일"이다.
2.2. 나다나엘의 모범: 편견을 넘어서는 의지
"와 보라!"에 응답한 나다나엘:
나다나엘은 나사렛에 대한 편견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빌립의 "와 보라!"는 말에 예수님께로 왔다. 이는 그가 "자신의 생각을 넘어서려는 의지"가 있었고, "편견을 편견으로 알고 넘어설 준비가 된 '사실의 사람(ἀληθῶς)'이었음"을 보여준다. "사실이면 무엇이든지 받아들이겠는 그 마음이 편견이 자리를 잃게 합니다."
'간사함이 없음'의 칭찬:
예수님께서 나다나엘을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라고 칭찬하신 것은, 그 속에 "거짓이나 속임수가 아닌 '참', '사실', '진실(ἀλήθεια)'이 있었기 때문"이다.
2.3. 영원의 세계를 경험하는 '세 번째 신앙 단계'
하나님의 영을 깨닫는 단계:
현재 신앙인들은 "부활의 시대를 살고 있으므로, 자신을 버려 하나님의 영을 깨닫고 하나님께서 아버지로서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실감하는 '세 번째 신앙 단계'에 들어서야" 한다. 이 단계를 통해서야 비로소 "‘보여야 할 것이 보입니다’."
'더 큰 일'을 목격:
나다나엘처럼 편견을 넘어선 자는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예수님) 위에 오르락내리락하는 야곱의 사닥다리와 같은 ‘더 큰 일’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는 "예수님이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분이시며, 사람의 자식에서 하나님의 자식으로 끌어올리려는 요한의 의도와 연결"된다.
있는 그대로 보는 믿음:
"믿음은 ‘있는 그대로 보는 데서 출발하며’, 내 안에서 편견이 사라질 때 하나님 아버지께서 어찌하시는지 보게 됩니다." 이것이 "‘의인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사는’ 하박국 2장 4절의 의미"이다.
3. 요한복음과 공관복음의 차이: '사실'을 넘어선 '지향점'과 '영적' 의미
요한복음은 공관복음과 기록자의 입장, 내용의 취사선택, 관점 등 여러 면에서 뚜렷한 차이를 보이며, 이는 편견을 넘어 영적 진실을 추구하려는 저자의 의도를 반영한다.
3.1. 기록자의 입장과 목적: '기자'와 '저자'의 차이
공관복음은 '기자'와 유사:
마태, 마가, 누가는 "마치 신문 기사를 쓰듯 사실 그대로를 기록"했다는 점에서 '복음서 기자'라고 불릴 수 있다. 이들은 "축자영감설 또는 기계적 영감설에 가까운 방식"으로, "사실에 조금 더 가깝게 기록"했다.
요한은 '저자'에 가까움:
요한은 "자기 생각을 그만큼 많이 담아" '저자'라고 불릴 수 있다. 요한복음은 "사실을 넘어서는 무엇이 있으며, 그래서 더더욱 ‘영적(靈的)’"이라고 언급된다. 요한은 "사실보다는 사건이 무엇을 지향하는가에 바탕을 둔 저작물"이며, "자기가 전하고자 하는 바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3.2. 내용의 취사선택 및 관점: '사실'에서 '지향점'으로
세례 요한 기록의 차이:
마태와 누가는 세례 요한이 예수님의 메시아 여부를 고민했던 부분과 그의 죽음을 기록했지만, "요한복음에는 세례 요한의 이러한 고민이나 감옥에 갇혔다 죽은 사실에 대한 기록이 없습니다." 요한은 "자신이 전하고자 하는 바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판단하여 이 부분을 제외했다.
예수님 탄생 기록의 차이:
마태와 누가는 예수님의 탄생지를 "베들레헴"으로 언급하며 "다윗의 자손"임을 드러내려 한 반면, "마가와 요한은 예수님의 탄생 이야기를 다루지 않습니다." 요한은 "유대인의 메시아에 대한 오랜 관념(다윗의 자손 등)을 배제하고,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라는 표현을 통해 나사렛 사람 예수의 실존을 가지고 말하려 했습니다." 그는 "막강한 타이틀을 내던지고 사실만 보고자 하는 입장"이었다.
'인자(人子)' 담론:
요한은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라는 표현과 '인자(υἱός τοῦ ἀνθρώπου, 사람의 자식)'라는 말을 통해, 예수님이 "사람의 자식에서 하나님의 자식으로 끌어올리려는" 의도를 담고 있다. 이는 "사람의 아들과 하나님의 아들을 동일시"하며, 기존 신학의 깊이가 얕음을 지적한다.
'진실로 진실로(Ἀμὴν ἀμὴν)'의 반복:
요한복음은 다른 복음서와 달리 "‘아멘(Ἀμὴν)’을 두 번씩 사용하는 특징"을 보인다. 이는 '진실', '확실함'을 강조하는 요한의 관점을 잘 보여준다.
4. 결론 및 시사점
성경 속 인물들의 내적 갈등은 현재 신앙인들이 편견과 세속적 욕망에 얽매여 있을 때 겪는 문제와 정확히 일치한다. 진정한 영적 성장은 이러한 '땅의 것'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사실(진실)'을 추구하며 '자기를 부인'하는 과정에서 시작된다. 나다나엘의 사례는 편견에도 불구하고 진실을 향해 나아가려는 의지가 있을 때, '더 큰 일'을 경험하고 영원의 세계로 들어설 수 있음을 보여주는 모범이다.
요한복음은 공관복음과 달리 예수님 사건의 "지향점"과 "영적" 의미에 초점을 맞춰, 독자들이 유대인의 오랜 관념이나 세속적 편견을 넘어 "나사렛 사람 예수의 실존"과 그가 궁극적으로 가져올 "영원한 세계"를 깨닫도록 이끌고 있다. 오늘날 한국 교회는 "믿음이 곧 사실 내지는 진실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는 점을 깊이 생각하고, "거짓을 일삼으며 믿음을 논할 수 없"음을 자각하며, 각 신앙인 개인이 신앙의 편견에서 자유로운지 깊이 성찰해야 할 것이다. 이를 통해 피상적인 신앙을 넘어 "하나님의 영원한 세계를 깨닫는 깊이 있는 신앙"으로 나아가야 한다.
---
---
· https://youtube.com/@moon.moksha
___
Comments
In Channel